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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말리온의 인형

Written By. 임징징이

 

 

* *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 *

 

“완성이야. 정말 오래 걸렸는데……. 기분이 어때?”

인형에게 말을 건다. 대답하지 않을 것이 분명한데도 쿠로오는 늘 자신이 완성한 인형에게 말을 걸었다. 기분이 어때? 드디어 네가 태어났어. 그건 마치 저 자신에게 건네는 질문과도 같았다.

대답을 원하고 건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인형은 당장이라도 입술을 달싹이며 제 기분을 말해줄 것 같았으므로, 쿠로오는 가만히 인형의 두 뺨을 감싸 쥐고 입술을 쓸었다.

유려한 곡선이 흘러내리는 뺨은 무척 곱고 부드러웠으나, 애석하게도 쿠로오의 손길에 조금도 형태를 흩트리지 않을 정도로 단단했다. 말랑할 것 같기만 하던 입술도.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나는 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 자신이 있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온 힘을 다해서.

쿠로오는 가만히 고개를 꺾어 인형의 입술 위로 입을 맞췄다. 단단한 입술 위로 부드러운 살결이 조심스럽게 눌렸다가 떨어진다. 그 움직임이 퍽 애틋해서, 누군가 그 모습을 보았다면 쿠로오 테츠로가 제 인형에게 반해버렸다고 믿어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나치게 작업에 몰두한 나머지 자신의 작품을 보고 사랑에 빠져버렸다고.

틀린 말은 아니다. 쿠로오는 제 손에서 태어난 모든 인형을 사랑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인형을 마침내 탄생시키고 만 자신의 능력을. 그러나 이 인형만큼은 특별했다. 쿠로오는 방금 제 손에서 태어난 역작을, 인형 그 자체를 사랑하기로 했다. 사랑하는 것엔 이름을 붙여줘야지. 이름을 붙이고, 자신만이 부르는 애칭을 지어 사랑을 전해야지.

“츠키시마.”

이름을 정하는 데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이것이 사람의 형태를 갖추기도 전부터 정해진 이름이다. 츠키시마 케이. 달빛을 머금은 반짝이는 이름을 너에게 선사하기로, 작업대에 선 그 순간부터 결심했다. 이름에 걸맞은 인형을 탄생시키기 위해 얼마나 긴 시간 동안 땀을 흘렸는가.

쿠로오는 인형의 고운 머리칼을 쓸어내리며 그제야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문엔 두꺼운 암막 커튼이 드리워져 있어 밖을 볼 수 없었지만, 커튼 사이로 빛이 스며드는 것을 보면 분명 어느새 날이 밝은 것이 분명했다.

“너에게 어울리는 옷을 사 와야겠어. 아름다운 천을 골라서 마을에서 제일가는 재단사에게 맡길게.”

그때까진 잠시 혼자 있어 줘. 쿠로오는 아주 잠깐이라도 인형과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퍽 안타깝다는 얼굴로 인형의 뺨과 입술을 다시금 쓸어내렸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유리 눈과 단단하게 다물린 입술은 아무런 대답도 돌려주지 않았다. 쿠로오는 인형을 소중하게 안아 들고 그 몸을 작업대에서 내렸다.

팔에 전해지는 무게감은 마른 몸에 비해 크다. 죽은 사람을 안아 들었을 때처럼. 쿠로오를 지독한 슬픔의 나락에 처박았던 그 무게감은 이제 희열과 경탄의 무게가 되었다. 쿠로오의 품에 안은 인형을 고운 천이 드리워진 의자에 앉혔다. 완성된 네가 앉아있기로 예정되어있던 장소다.

“다녀올게. 금방 돌아올 거야.”

쿠로오는 인형의 입술에 다시 한번 입을 맞추고 작업실을 나섰다. 문을 여는 그 순간에도 뒤를 돌아보는 그의 눈엔 미련이 가득하다. 마침내 밖으로 걸음을 한 발 떼었을 때, 그제야 쿠로오는 자신이 작업실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은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계절이 바뀌어 있었다. 피부에 닿아오는 바람엔 전에 느끼지 못했던 더위가 스몄다.

 

 

* *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 *

 

 

쿠로오는 인형 곁을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자신이 사랑하는 모습을 모두 쏟아내어 만든 츠키시마는 완벽했고, 곧 살아 움직일 것처럼 고왔으니 곧 일어나 살아 움직인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츠키시마를 바라보는 일상은 늘 기쁨과 환희에 젖어 있었다.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하다고, 쿠로오는 믿었다.

그러나 곧 끝없는 욕망과 갈구가 쿠로오를 사로잡는다. 행복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쿠로오는 극도의 우울감에 빠져들었다. 아무리 사랑을 속삭이고 입을 맞추어도 응답하지 않는 인형에게 절망했다. 나의 사랑은 왜 항상 보답받지 못하는가? 이렇게나 진심인데.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뿐인데.

그 비통한 울음은 하늘을 울린다. 일주일 동안 비가 멈추지 않고 내렸고, 달은 뜨지 않았다. 쿠로오는 높아진 습도에 인형이 상하기라도 할까 두려워 곁을 떠나지도 못하고 인형 옆에서 먹고, 자며 인형을 보살폈다. 매일 인형의 피부를 윤이 나도록 닦아냈다. 그리고 또다시 한탄했다.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을 하게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해.

슬픔의 나날이 반복되던 어느 날, 쿠로오는 인형의 무릎을 그러안고 주저앉아 잠이 들었고, 꿈을 꾸었다. 꿈에선 형상을 알 수 없는 이가 가만히 앉아 쿠로오를 바라보았다. 아무런 말 없이. 강렬한 빛 때문에 쿠로오를 보는 이의 얼굴도, 표정도 볼 수 없었으나, 쿠로오는 왠지 그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고, 그가 곧 눈물이라도 흘릴 것처럼 안타까운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 것 같았다. 쿠로오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그를 위해 대신 울었다. 꿈에서 우는데도 마치 현실처럼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아마 정말로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도 모르지. 익숙하리만큼 자주 있는 일이니까. 눈물이 흘러내리는 그 생경한 감각이 쿠로오를 꿈에서 현실로 이끌고 나왔다. 그러나 아직 채 물러나지 않은 수마 탓에 눈은 제대로 떠지질 않는다. 그때, 사경을 헤매듯 허우적거리던 쿠로오의 머리 위로 낯선 손길이 닿아왔다. 눈에 맺힌 눈물을 훔쳐낸다.

그 순간 쿠로오는 놀라 퍼뜩 고개를 들었다. 누구도 있어선 안 되는 이곳에 누군가 있다. 누구지? 이곳엔 아무도 들인 적이 없는데. 도둑인가? 이러다 츠키시마를 망가뜨리기라도 한다면…….

“…츠키시마?”

고개를 든 쿠로오는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에게 밤새 무릎을 내어주었던 츠키시마와 눈이 마주쳤다. 쿠로오 자신이 직접 만든, 절망적일 만큼 완벽한 인형인 츠키시마와. 그는 분명, 쿠로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착각이 아니다.

“너…….”

인형은 부자연스럽게 허공에 손을 띄운 채 쿠로오를 바라보았다. 입을 살짝 벌리고, 쿠로오의 반응에 놀라기라도 한 듯한 표정으로. 손끝엔 물기가 묻어있다. 쿠로오의 눈물을 닦아낸 바로 그 손일 것이다.

“쿠로오… 테츠로.”

인형은 여전히 놀란 얼굴로, 입을 천천히 벌리고 부자연스러울 만큼 느릿느릿 쿠로오의 이름을 말한다. 목소리는 분명 쿠로오가 상상하던, 츠키시마의 목소리다.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가 없다. 쿠로오는 떨리는 손으로 인형의, 츠키시마의 손을 감싸 쥐었다. 인형은 쿠로오가 잡은 자신의 손을 한 번, 쿠로오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보더니 천천히 미소 짓는다.

쿠로오의 눈에서 다시 한번 눈물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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